바람이려오…..
우리의 오래된 기억이나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어떤 사건, 추억을 소환하는 모티브는 많다.
비가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햋볕이 쨍쨍하거나
하는 날씨의 변화일수도 있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나 산을 뒤덮은 노을, 까마득히 높은
구름 등 어떤 풍경 일수도 있다.
내가 그런 일을 했었던가 조차도 잊고 있었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과거의 일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제대를 한 이후였으니 85년이나
86년쯤 농산물을 주로 유통하는 차주의 집에서
기거하며 운전일을 한 일이다.
밭떼기로 계약을 했었는지 아니며 아름아름
연락을 하는건지 매년 그렇게 그 지역의 농산물을
도맡아 유통시켰는지 알수없지만 차주는 일년내내
농산물을 철철이 종류를 달리해 유통시켜 많은 돈을
벌여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봄에는 딸기밭을 돌아다니며 상품가치가 없는 딸기를
거저 가져가듯이 싣고와 잼공장에 납품을 했고
여름까지는 양파를 주로 유통시켰는데 1년여
운전기사로 일하며 나는 주로 양파를 싣고 다녔던거같다.
차주의 집은 경북경산이었는데 영덕까지 가서 양파를 싣고
진주도매시장에 주로 납품을 했는데 간간이 서울로 가기도 했지만
나는 주로 진주를 뛰었고 비가 오는 어두운 길을 달리며
내 앞날을 상상하며 힘을 얻기도 절망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이전 수송의 대세를 이뤘던 8톤 트럭이 지고
새로나온 4.5톤 복사가 유행할땐데 과거 도로에
퍼진차는 전부다 8톤트럭이라고 할 정도로 과적이
일상화되었고 그 뒤 바톤을 이어받아 퍼질러 앉는차가
4.5톤 복사였다. 물론 과적이 주 원인이 되었다.
펑크가 하나만 나면 어찌어찌 스패어를 갈수 있지만
몰펑크라고 두개가 동시에 터지면 감당이 매우 힘들다.
그날도 진주를 가는 길에 비는 억수같이 오는 가운데
몰펑크가 났다. 새로난 길이라 차도 별로 없고 낭패를
당한 가운데 어찌어찌 택시를 만나 타이어를 싣고
펑크를 메워 갈아 끼운뒤 하늘을 쳐다봤다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거기에 홀로 있는 내 자신이
처량해 구부려 오래 울었던 기억이 지금인양 생생하다.
햇볕은 쨍쨍하고 바람은 서늘한 처서가 지난즈음
영덕에서 양파를 싣는데 밭을 조금만 올라가면
바다가 보여 마을 주민들이 짐을 쌓고 싣는 동안
나무그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김범용의
바람바람바람이 차안 라디오에서 낭자하게 들여온다.
그때는 한참을 유행하는 노래라 그려러니 했는데
한동안 이노래를 들을때마다 그때 생각이 났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세월은 흘려 그노래는 다시 들을수 없었고
그날과 그 즈음의 기억도 뇌리에서 사라지고
다시는 소환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산책길 어른신의 라디오에서 그노래가 흘러나온다.
한순간에 생생하게 그때의 기억이 소환됐고
지금의 이순간에 나는 다시한번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