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결
오후 식곤증의 무게가 한커풀 눈을 들수도 없는
국사시간이다. 늘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선조들의
업적은 외적의 침략을 슬기롭게 막아낸 역사적 사실이다.
안시성이 그랬고 살수대첩이 그랬고 이순신의 갖가지
대첩들이 그러했다.
문득 작은 화가 치밀며 의문이 들었다.
잠결인듯 잠을 이겨내려는듯 무심하게
그래도 예의를 갖춰 물었다. 왜 이다지도
우리나라는 침략을 많이 받았냐고 왜 한번도
영토확장을 위한 선제적 침략은 없었냐고.....
시간이 멈춘듯 한참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쥐고있던 분필을 놓고 진도와 상관없는
우리네 역사를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강성했던 역사가 있었고 지정학적 위치가
그랬고 여러번의 잘못된, 이기적인 결정이
나라를 이꼴로 만들었다며 강의를 끝내고
힘없이 출석부를 들고 나가셨다.
나치독일의 치하에서 벗어난 프랑스는
꼴보수라는 드골이 나치에 부역한 세력과
개개인에대한 처절한 응징에 나섰다.
그 제 1순위가 언론이었고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를
비롯해 개개인 하나하나 색출해 이후 역사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예 꿈도 꾸지 못하도록
썩은 살을 긁어내고 뼈를 발라내는 척결에 나섰다.
자기 객관화에 처절한 반성위에 지워진 제도가
사상누각이 되지 않듯이 전후 독일 또한 전범인
자국민을 지금까지 쫒아 색출해 처벌해 나가면서
그들의 진심과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세계의 공감을 얻어내고 다시금 리더의 지위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일제에 부역하던 경찰이 다시 독립된 나라의
경찰이 되고 군인이 되고 급기야 권력까지
거머쥐고 제국주의에 부역한 이들의 척결은
고사하고 그에 저항한 이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던 역사가 아직도 되풀이 되고 있다.
민주정부에서 그나마 조금씩 썩은 부위를
찾아내고 이제는 긁어내고 발라져야 할
것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나대고 있다.
생각과 정치적 지향이 다를수 있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국민적 임계점이란 것이 있다.
민주적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그것이고
일제와 공산주의에 부역한 이들에 대한 척결의
의지가 또 그것이 될 수 있다.
과거 일제와 전쟁을 경험한 이들은 다 세상을 떠났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나와 같은
시기에 같은 교육을 받았던 세대다. 그래서 일제와
전쟁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이 합일될 수 있는 공감점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늘 그렇듯 내맘같지 않다.
독립이 된지 80년 거의 100년이 되어 가는 마당에
일찌감치 치욕적인 잔재를 척결하고 처절한 반성하에
세워진 반석위에 미래를 설계하고도 남음이 있을법한
시절에 아직도 친일의 잔재들이 설치고 횡행하는
시대를 살아가는게 너무 아프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