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전쟁
요즘은 넘쳐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계란에 대한 목마른
추억은 다들 하나씩 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는 너무
늙은이스럽거니 하다가
버스차장 밖으로 팔던 계란 얘기도
도긴개긴 늙수그레하긴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계란찜은 숟가락 가득
떠서 먹는 음식이됐지만 어린시절
밥상에 어렵사리 등장하던 계란한개로
만든 찜은 너무짜서 세식구가 다 먹지
못하고 다음날 또다시 먹을 정도였다.
그런 목마름으로 차창에서
팔던 계란을 똑같이 먹고싶어
삶아 좀 오래둬 노른자를
퍼렇게 만든후 추억을 먹는답시고
염병을 하기도 했다.
라면 또한 민짜가 맛있지만
고급스러움을 더한다고 계란을
한두개씩 꼭 넣어 끓여대곤 했다.
10여년 전만까지만 해도 묘사를
직접 산으로가서 모셨다.
시골 근동에 어지러이 모셔진
산소를 다 돌려면 새벽부터 나서야
하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날 시골에 도착해 자고 새벽길을
나서는게 연례행사였다.
물론 지금은 제실에서 다 모아
모시고 있지만....
30년도 훌쩍 지난 일이지만
일요일 묘사를 위해 전날 저녁
큰형네에서 밥을 먹고 출발할
요량으로 집엘 갔더만 형수도 없고
반찬도 시원찮다.
라면에 밥을 말기로 하고 부산하게
끓이고 딱 두개남은 계란을 풀어
익기를 기다리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그때는 택배일리 만무하고 신문을
보라거나 교회에 나오라거나 시덥잖은
방문객을 손사래로 물리치고 들어오니
라면냄비를 식탁중앙에 두고 형은
벌써 라면을 흡입하는 중이다.
자리에 앉아 냄비 구석구석을
아무리 뒤져도 계란이 안보인다.
형 그릇도 보고 냄비도 뒤지면서
분노의 레이저를 쏴도 본채 만채다.
"와 계란이 없노" 물으니
하나밖에 안먹었단다.
분명히 두개를 넣었는데
한개는 어딨냐고 재차 물으니
죽어도 한개만 먹었단다.
백보를 양보해 계란 두개가
붙어 있었다치더라도 크기가
그만하니 잘라서 먹어야 했다.
건데 그걸 미친척 낼름 먹어놓고
한개라고 우기니 갑자기 열이
뼏쳐 젖가락질이 고울리 없다.
급기야 계란 좋아하는거 다들
알면서 그럴수 있냐고 따지고
별것도 아닌걸로 역정을 낸다며
옥신각신 진심만 코미디반
대판 전쟁을 치르고 만다.
조금은 미안했던지 밥도
떠오고 김치도 더 내온다.
다음부터 조심하겠다는
다짐도 받아내고서야
전쟁은 마무리됐다.
내가 싫은거는 남도싫고
내가 좋은거는 남도 대부분
좋아한다.
뭐던 갯수를 계산해 먹고
특히 계란은 그리해서는
안되는 음식이다.
다들 조심하자
잘 끓여진 라면위에
노란계란이 올라가 있는
라면광고를 보자니
그때의 분노가 다시 떠올라
괜시레 열이 뻗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