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눈덮인 겨울산의 아름다움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치악산과
산행내내 눈호강을 시켜주는
덕유산이 최고이지 싶다.
내가 경험한바 그렇다.
늦가을 내장산을 찾았다
우연히 마주한 눈보라와
그렇게 쌓인 설산의 매력에
홀려 겨울산행을 시작한게
2010년도의 일이다.
꼭 겨울산이 아니더라도
산행과 정상에 섰다는 쾌감,
더불어 준비해간 음식을 먹는
재미를 한껏 음미하며 다가올
겨울산행 준비와 기대로
봄부터 가을까지의 산행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기도 했다.
기대하던 겨울이 왔고 겨울산행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고자 가급적
추운날을 골라 덕유산으로
길을 잡은게 2011년초였을 것으로
기억이 된다.
기대했던대로 초입길은 즐거웠고
정상으로 향하는 도중 마주하게되는
설산과 상고대, 이 모두를 렌즈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그 황홀경의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움은 배가됐고 정상에서의
점심 생각에 발걸음은 경쾌했다.
건데 정상 산장이 바라다 보이는
100여미터 앞에서 급작스런 한기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위험천만한
사태를 맞이했다.
아직은 젊다는 혼자만의 생각
일천한 겨울산행 경험
부실한 장비로 인해 조금씩 쌓인
냉기가 저 체온증으로 갑자기
나타났던 거다.
중간에서라도 그런 위기를
맞았다면 큰 변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위험한 상황으로 기억된다.
죽을 힘을 다해 산장으로 달렸고
미어터지는 산장안의 온기를
한참이나 받은 뒤에 제정신을 차리고
준비없이 시작한 겨울고산 등반과
자연의 소리없는 경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됐다.
부산에 당도하자마자 우모복을
비롯해 겨울산행 복장과 장비를
구입하는데 100만원 가까이를
지출했다. 특히나 끊임없이
괴롭혔던 손끝 시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해 11만원이 주고 구입한
장갑이 위에 저거다.
약간의 바가지가 있었겠지만
만족할 만한 성능을 수년간 발휘했고
지금도 한겨울 산책에는 물론
출퇴근 길에도 애용하고 있다.
기깔나는 고급스런 장갑이
어느덧 많이 낡은 모습으로
내년을 기약하고 있는 모양이
눈에 밟힌다.
과거 어리석은 객기로 맞게된
위험과 그 깨달음으로 10년을
넘게 함께했고 헤지고 닳아
없어지지 않는한 그렇게
함께 가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