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누가했는가 찾아보니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스튜어트 밀이란 사람이 했다.
경제를 공부한 철학자이다 보니
그때도 보다나은 풍요를 갈구하는
세태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생각해볼 때 자본에 매몰되기 보다는
사색과 절제를 통한 내면의 성숙을
강조한 철학자의 경구가
아니었을까 여긴다.
배고픔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의
헛소리라는 아버지 세대의 노함과
배부른 소크라테스는 안되냐는
우리세대나 뒷세대의 우스게 반응도
함께 나왔던 유명한 말이다.
미국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1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4개국이 가족을 꼽앗는데 유일하게
한국만 물질적 풍요를 꼽았단다.
더욱이 다른나라에서 상위권에 오른
친구, 직업, 취미는 순위내에서 찾아볼수가
없었단다. 뭐 그럴수도 있지 않겠냐 생각이
드는 이면에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평생을 직장생활만 한터라 적지만
한푼 두푼 모아 더디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또 내일이 좀 나은 삶을
추구하는게 정상적이고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건데 약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보고
피부로도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인간구실 못할것 같은 친구나 친지들이
집한채 조그만 땅덩이 하나 굴려
내가 평생가도 만지지 못할 돈을 번다.
좌고우면 않고 평생의 밥줄이란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도 어떤이는 재테크를
통해 엄청난 부를 거머줬다는 소리가
솔깃하다. 잠시 일탈을 생각케 하기도 했다.
우리네 아들 세대들은 일찌감치 눈을 떤
경제감각으로 엄두도 내지 못했던 투자를
시전하며 영끌이니 뭐니 차원다른 재테크
역량을 보이고 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제활동인지
왜곡된 시장을 교묘하게 또는 정당한
방법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미 흠뻑젖은 물질만능에 끝모를
탐욕까지 더해진 형국이다.
한때의 인문학 열풍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파고를 잠재우는가 싶었는데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고 존 스튜어트 밀의
경구는 설 자리를 잃었다.
결핍이 결핍된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반면 절대적 결핍으로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삶이
이쪽과 저쪽 끝에서 칼날처럼 공존하는한
물질적 풍요(탐욕)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세상에 살아야 할 게 분명하다.
대다수가 영위하는 보편적, 평균적
중립지대가 사라진 듯 한 어느지점에서
나는 이도 저도 아닌것 같다.
이쪽에서 보면 저쪽에 저쪽에서 보면 이쪽인
중간쯤에는 있는걸까 소위 말하는 평균치에
가까운 삶을 살고나 있는걸까 많이 궁금하다.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를
선택하라는 궁극의 설문을 던지고 싶고
그 답 또한 심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