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酒)
나에게 술은 천적과도 같았고
호환마마와 다를바 없다는 세뇌를 받아온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음식으로 인식됐다.
가족병력이 그랬고 아무리 애를써도
도무지 이겨내지 못했고 신체건강한 놈이
술을 잘 마셔대지 못한다는 놀림이
늘 쭈굴하고 아무도 개의치 않는 취약한
지점이 되곤했다.
객기를 부려보기도 했다.
부산역에서 막걸리를 마신 기억이 있고
집으로 오는 버스라 믿었던 차안에서 기절했고
집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명륜동 버스정류소 앞
하수도 진창에 처박힌 나를 발견하는
유사한 여러번의 흑역사만 기록했을 뿐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도 그 취약점은
전혀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빠질수 없는 회식자리에서
졸도하는건 기본이고 집에와서는
돌고도는 천장을 잡으려 발버둥을
쳐대야만 했다.
중간중간 게워내느라 뒤집히는 속과
균형을 맞추려는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을 일말을 저항도 없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주구장창 퇴근 시간만 되면 술자리를 만드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제발 그시간에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애들과 가족들과
보내시라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를 해대곤 했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그렇게 미약하게 시작된 내공쌓기가
어느순간 기혈이 뚫리면서 폭발적으로
쌓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루 소주1병이 아니면
서운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술을 잘마시게 됐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술의 내공이 천부적인 신체조건으로
확보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살이의 힘듦이
만들어낸 정신적 스트레가 또다른 기제가
될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게다.
나의 선배들이 술이 좋아서
매일 그렇게 마셔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간난(艱難) 잊고 다가올 신고(辛苦)를
이겨낼 힘을 비축하기 위한 것임을 이제야
알게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게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똑같은 어려움을 마주하고 살고 있는 나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그래도 술은 좀 줄여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