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슬픈 귀향

oriwallace 2017. 8. 2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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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소련, 중공이라는 어릴때부터

익히 들어온 적대국 나라와는

별개로 적대국에 속한 한 도시를

그만큼 익히 들어온 곳이 사할린이다.

 

수많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여러나라의 도시들중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 지명을 알수있었던 건

지금도 그런지 알수 없지만 철천지

원수인 것처럼 세뇌된 일부 적대국보다

더 적대적으로 미워한 일본이란 나라의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간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를 통해 또는 수많은 증언을

통해 들은데 기인할 것이다.

 

한분의 고모와 일곱분의 삼촌중

한분이 다리가 불편한 형 대신

끌려가셨단 얘기를 어른들 얘기속에

들었고 내가 모르는 제사를 누가 지낸다고

할때도 그 얘기를 듣곤했다.

 

아마도 귀향하지 못한걸

돌아가신걸로 여겨 제사를 모시는구나....

그렇게 그때는 가족의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근대역사의 한쪽으로 그일을

바라봤던것 같다.

 

1987년 이후 속칭 북방외교의 작은 결실이

나올때 즈음인 1990년초 그렇게 잊혀졌던

사할린에서 날아온 소식은 나를 비롯한

모든 가족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 최근까지 생존해 계셨고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을 버리시지 않았다고......

특히 사진속의 생존모습이 선친과 너무닮아

그 한과 고향으로의 그리움이 조금은 전해져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당신대신 동생을 보내야 했던

형이 부랴부랴 노자돈을 마련해

사할린을 다녀왔고 당연할 줄 알았던

묘지수습과 고향안치는 죽은자의

각골통한보다는 산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주술적 절규에 막혀버렸다.

 

그 형 또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통한과 회한을 안은채 세상을 등졌고

오랜세월 사할린은 우리가족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근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집안의 대소사를 어릴적부터 맡아오던

사촌형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사할린

삼촌의 국내안치를 결정했다.

 

90을 넘어 생존해 계신 동생의 지성과

사지로 떠나보낸 통한의 기억만 가진채

세상을 등진 형의 한탄,

부모형제와 자매 친지, 고향마을을

마지막까지 떠올리며 눈을 감았을

죽은자의 원통함을 여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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